독일 내에서도 여론이 들끓고 있다. 최근 독일의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반수 이상이 원자력발전을 재개시키고 석탄 사용을 한시적으로 늘려서라도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금지하자고 답변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당장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만한 수입선을 찾을 수 없다며 반대 입장만 거듭 밝히고 있다.
실제 독일은 러시아에서 오는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를 통해 전체 에너지 수급의 55%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 인접국인 영국과 프랑스의 러시아산 PNG 의존도가 5% 내외임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옛 동구권 국가들을 제외한 서유럽 국가들 중 독일처럼 러시아산 PNG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드물다.
더구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의 대체수입을 위한 항만 터미널조차 단 1기도 갖춰져 있지 않다. 이미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악화된 러시아와 EU의 적대적 관계를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조치다. 잠재적 적국에 에너지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전 직전인 2월 초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인 가스프롬의 이사로 재임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행보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그는 아직도 가스프롬 이사회에 남아 있다. 미국의 반대에도 러시아와의 직결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건설을 밀어붙인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까지 논란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독일 정계가 이처럼 러시아 가스와 밀착된 것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대전 후 철강 강국으로 떠오른 당시 서독은 옛 소련과 천연가스 협력사업을 시작해 독일이 가스관을 만들어 공급하고, 소련이 이를 매설해 가스를 공급하는 형태로 추진했다. 1973년 빌리 브란트 당시 독일 총리가 러시아와 첫 가스공급 계약을 맺은 이후 양국 간 가스관 협력사업은 더욱 확대돼 오늘날까지 반세기 동안 이어져 왔다.
미국은 이미 1970년대부터 독일과 옛 소련 간 이어진 가스관 밀회에 대해 수차례 경고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이후 독일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1989년 동독 붕괴 당시 30%대였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오늘날 50%대를 넘어서면서 대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평가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에너지 수급문제는 결코 단기적인 눈앞의 이익에 따라서만 움직여선 안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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