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사찰이 넘쳐나던 고대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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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7HT1137 작성일19-12-08 17:56 조회6,65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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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사(고구려,평양)
3만 7000 제곱미터
60~70미터의 거대한 목탑이 있었음
중심부의 길은 벽돌로 포장되어 있었으며 온돌이 있었음
60~70미터의 거대한 목탑이 있었음
중심부의 길은 벽돌로 포장되어 있었으며 온돌이 있었음
황룡사(신라,경주)
8만 제곱미터(2만 5000평)
80미터의 목탑 존재
190cm의 치미
190cm의 치미
미륵사(백제,익산)
16만 제곱미터(5만평)
36년간 건설된 것으로 추정
16만 제곱미터(5만평)
36년간 건설된 것으로 추정
60미터 이상의 목탑과 25미터 높이의 석탑 두개가 있었음
청암리사(고구려,평양)
60미터 급 팔각 목탑 존재
청암리사 복원도
보원사(백제,서산)
10만 제곱미터
100개의 암자와 1000명의 승려가 있었다는 구전 존재
4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보원사 석조
257cm의 보원사지 철불
굴산사(통일신라,강릉)
8만 제곱미터의 터
국내 최대 규모의 당간지주(5.4미터)
불국사(신라,경주)
임진왜란 때 불타기 전에 2000칸,80여개의 건물(현재의 8배)
실상사(신라,남원)
황룡사와 비슷한 규모의 터와 건물 크기
황룡사 목탑보다 더 큰 목탑터(73~90 미터 추정)
황룡사 목탑보다 더 큰 목탑터(73~90 미터 추정)
연복사(고려,개성)
1000칸이 넘는 규모
정전인 나한보전은 고려도경에 따르면
1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궁궐보다 웅장했으며
200척(60미터)이 넘는 목탑이 있었다고 함
정전인 나한보전은 고려도경에 따르면
1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궁궐보다 웅장했으며
200척(60미터)이 넘는 목탑이 있었다고 함
조선 전기 기록
"한 중앙에 우뚝 선 5층 누각이 온 성중을 압도하고 있는데
창문과 기왓장에 저녁놀이 비친다. 참으로 웅장한 건물이다"
또한 1만권의 장서를 소장중인 2층 누각 장경전이 존재했다고 함
흥왕사(고려,개성)
대각국사 의천이 초대 주지를 맡은 왕실 사찰
32만 평방미터(10만평 정도)
2800칸의 규모
2800칸의 규모
1000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함
30미터 정도의 목탑 두개 존재
은 427근과 금 144근으로 만든 금탑이 있었음
30미터 정도의 목탑 두개 존재
은 427근과 금 144근으로 만든 금탑이 있었음
만복사(고려,남원)
11미터 1만 3000근의 거대 동불 존재
4만 평방 미터
5층 전각이 존재했음
이것들 말고도 큰 사찰은 많았지만 넘 길어져서..
물론 그런 큰 사찰들 사실상 전부가 현재는 소실되고
현재 한국의 큰사찰들도 기존 건축은 목조건물 종특인 화재로 불타고 남은 건 거의 조선후기에 지은 건축이라 건물 크기와 사찰 규모가 작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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